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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안전관리(PSM) - 대규모 화학공정 안전관리의 핵심 시스템

Neural Center 2025. 5. 2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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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인도 보팔 화학공장 참사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메틸이소시아네이트 가스 누출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부상당한 이 사고는 단순한 작업자 부주의가 아닌 시스템 차원의 안전관리 실패였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 공정안전관리(Process Safety Management, PSM) 제도가 도입되었고, 우리나라도 1996년부터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PSM은 화학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대산업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종합적 안전관리 시스템으로, 현재 석유화학, 정유, 가스 등의 업종에서 의무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PSM 적용 대상과 범위

공정안전관리 제도는 모든 화학공정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유해·위험물질을 취급하는 공정에만 적용된다. 적용 기준은 물질의 위험성과 취급량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설정되었으며,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PSM 적용 대상 물질은 104종으로, 독성물질 78종과 인화성물질 26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성물질은 급성독성이 강한 물질들로 암모니아(500kg), 염소(500kg), 황화수소(500kg) 등이 포함되며, 인화성물질은 석유류, LPG, 천연가스 등이 해당된다. 각 물질별로 규정량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어, 해당 규정량 이상을 제조·취급·저장하는 공정은 PSM을 적용해야 한다.

적용 범위는 단순히 해당 물질을 저장하는 탱크만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공정설비를 포함한다. 원료 투입부터 제품 출하까지의 전체 공정이 PSM 대상이 되며, 부대설비인 유틸리티, 폐수처리시설, 소각로 등도 관련 물질을 취급한다면 포함된다. 또한 정비작업이나 비정상 운전 상황도 PSM 관리 범위에 포함되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최근에는 PSM 적용 대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9년에는 수소불화산, 2021년에는 일산화탄소가 새롭게 추가되었으며, 2024년부터는 기존 규정량이 하향 조정되어 더 많은 사업장이 PSM 적용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화학사고 발생 현황과 국제적 동향을 반영한 것으로, 사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적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PSM 12개 요소의 체계적 구성

공정안전관리는 12개의 핵심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요소는 상호 연관되어 통합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형성한다. 이 12개 요소는 공정안전정보, 공정위험성평가, 운전절차서, 교육훈련, 도급업체 안전관리, 가동전 안전성 검토, 기계적 건전성, 비상조치계획, 사고조사, 법규준수감사, 근로자 참여, 공정안전정보 관리로 구성된다.

공정안전정보는 PSM의 기초가 되는 요소로, 취급 물질의 물성 및 독성정보, 공정기술정보, 공정설비정보를 포함한다. 물질정보에는 물리·화학적 특성, 반응성, 부식성, 열적 및 화학적 안정성 데이터가 포함되며, 이는 공정설계와 운전조건 설정의 근거가 된다. 공정기술정보에는 화학반응식, 최대 재고량, 운전온도·압력·유량의 상하한치 등이 포함되고, 설비정보에는 재료명세서, 배관계기도면(P&ID), 전기분류도면 등이 포함된다.

공정위험성평가는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요소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다. HAZOP(Hazard and Operability), FMEA(Failure Mode and Effect Analysis), FTA(Fault Tree Analysis) 등의 정량적·정성적 분석 기법을 사용하여 위험시나리오를 도출하고, 각 시나리오별 발생 가능성과 영향 정도를 평가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위험도를 등급화하고, 허용 가능한 수준까지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대책을 수립한다.

운전절차서는 공정의 안전한 운전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서다. 정상운전, 시운전, 정지운전, 비상운전, 일시적 운전 등 모든 운전 상황에 대한 절차를 포함하며, 각 단계별로 운전조건, 안전주의사항, 비상조치 방법을 상세히 기술한다. 절차서는 정기적으로 검토하여 최신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운전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한다.

가동전 안전성 검토의 중요성

가동전 안전성 검토(Pre-Startup Safety Review, PSSR)는 새로운 공정의 가동이나 기존 공정의 개조 후 안전한 가동을 보장하기 위한 체계적인 검토 과정이다. 이는 PSM 12개 요소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요소로, 설계 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위험요소를 사전에 발견하고 개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PSSR은 공정안전정보의 완성도, 위험성평가 권고사항의 이행, 운전절차서의 적정성, 교육훈련의 완료, 기계적 건전성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공정 개조의 경우에는 변경사항이 기존 공정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여 새로운 위험요소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검토 과정에서는 다학제 전문가팀을 구성하여 공정기술, 안전, 설비, 운전 등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한다. 현장 점검을 통해 설계도면과 실제 설치 상태의 일치성을 확인하고, 안전장치의 정상 작동 여부를 시험한다. 또한 비상상황에 대비한 대응체계가 구축되어 있는지도 검토한다.

PSSR 완료 후에는 검토 결과를 문서화하여 보관하고, 지적사항에 대한 개선조치를 완료한 후 가동 승인을 한다. 가동 승인은 공장장 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자가 하며, 승인 과정에서 모든 검토 항목이 만족스럽게 완료되었음을 확인해야 한다.

기계적 건전성과 정비관리

기계적 건전성(Mechanical Integrity)은 공정설비가 설계 목적에 맞게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고장 방지를 넘어 안전과 직결된 중요한 요소로, 체계적인 정비관리를 통해 달성된다.

압력용기, 배관, 안전장치, 비상정지시스템 등 공정 안전에 중요한 설비는 별도로 관리하여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이러한 설비들은 제작 단계부터 적절한 재료와 설계기준을 적용하고, 설치 후에는 정기적인 검사와 시험을 통해 건전성을 확인한다.

정기검사는 설비의 종류와 사용 조건에 따라 주기를 설정한다. 압력용기는 내부검사와 수압시험을 통해 부식, 균열, 변형 등을 점검하고, 안전밸브는 정기적으로 분해점검하여 설정압력과 작동성능을 확인한다. 배관은 두께측정과 비파괴검사를 통해 부식과 균열을 점검하고, 필요시 교체한다.

예방정비 시스템을 구축하여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동분석, 열화상진단, 오일분석 등의 상태감시 기술을 활용하여 설비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 발견 시 즉시 조치한다. 이를 통해 계획되지 않은 정지를 방지하고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변경관리와 안전성 확보

공정 운전 중에는 다양한 변경사항이 발생한다. 원료 변경, 운전조건 변경, 설비 개조, 절차 변경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러한 변경은 새로운 위험요소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체계적인 변경관리(Management of Change) 절차를 통해 변경의 안전성을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

변경관리 절차는 변경 요청, 안전성 검토, 승인, 이행, 사후관리의 단계로 구성된다. 변경 요청 시에는 변경 내용, 변경 사유, 예상 효과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관련 부서의 검토를 받는다. 안전성 검토에서는 변경이 기존 공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새로운 위험요소가 있는지 평가한다.

일시적 변경과 영구적 변경을 구분하여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시적 변경은 정해진 기간 내에서만 허용되며, 기간 만료 시 자동으로 원상 복구되거나 영구 변경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영구적 변경은 관련 문서를 모두 갱신하고, 교육훈련을 실시하여 모든 관련자가 변경 내용을 숙지하도록 해야 한다.

변경 승인은 해당 변경의 위험도에 따라 승인 권한을 차등 적용한다. 경미한 변경은 현장 관리자가 승인할 수 있지만, 중대한 변경은 공장장이나 기술 책임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 후에는 변경 이행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면 즉시 조치한다.

사고조사와 학습 시스템

PSM에서 사고조사는 단순히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개선을 통해 유사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고조사는 사고 발생 즉시 시작되며, 증거 보전, 원인 분석, 재발방지 대책 수립, 이행 확인의 단계로 진행된다.

근본원인분석(Root Cause Analysis)을 통해 표면적인 직접 원인뿐만 아니라 시스템적 원인까지 파악한다. 인간 요인, 기술 요인, 조직 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다층적 방어벽의 실패 원인을 규명한다. 어류뼈 분석법(Fishbone Diagram), 5Why 분석법, 사건수목분석법(Event Tree Analysis) 등의 체계적 분석 기법을 활용한다.

사고조사 결과는 전 조직에 공유하여 학습 효과를 극대화한다. 사고 사례집을 발간하고, 교육훈련에 활용하여 유사 사고를 방지한다. 또한 업계 차원에서 사고 정보를 공유하여 집단 학습을 통한 안전성 향상을 도모한다.

아차사고(Near Miss)와 안전 관찰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실제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잠재적 위험을 내포한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사전 예방조치를 강화한다. 이를 위해 익명 보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고자에 대한 포상 제도를 운영한다.

디지털 전환과 PSM 4.0

최근 PSM 분야에서도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활발하다. IoT 센서를 통한 실시간 데이터 수집, AI를 활용한 이상 징후 감지, 디지털 트윈을 통한 가상 시뮬레이션 등이 PSM의 효과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예측정비 시스템은 설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고장을 사전에 예측한다. 진동, 온도, 압력, 유량 등의 다양한 센서 데이터를 AI가 분석하여 정상 패턴에서 벗어나는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한다. 이를 통해 계획된 정비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은 교육훈련과 비상대응훈련의 효과를 크게 향상시킨다. 실제 사고상황을 가상으로 체험하면서 대응 능력을 기를 수 있고, 위험한 작업을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다. 또한 정비작업 시 AR을 통해 절차서와 도면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여 작업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결론

공정안전관리는 대규모 화학공정의 안전을 보장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12개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종합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형성하며,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안전성을 향상시킨다. 특히 가동전 안전성 검토, 기계적 건전성, 변경관리, 사고조사 등의 요소는 중대산업사고 예방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PSM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법적 의무 이행 차원을 넘어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략적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모든 구성원이 PSM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안전한 공정 운전이 가능하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PSM도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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